권리금 보호 어떻게 하나
상가임차인(세입자)의 권리금 보호를 위해 정부가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관련법 개정에 나선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상가권리금은 임차인끼리 관행적으로 주고받는 자금일 뿐, 법적으로는 보호는커녕 인정받지도 못했다. 이러한 법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임대인(건물주)의 권리금 탈취 행위가 계속돼왔다.
정부가 24일 발표한 ‘상가임차권 및 권리금 보호방안’은 임대인의 약탈적 권리금 탈취 행위를 금지하고, 임대인에 견줘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임차인의 협상력을 높여주며,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권리금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기본 뼈대다.
이에 따라 앞으로 임대인은 직접 권리금을 받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기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계약을 거절할 수 없다. 임대인이 직접 영업을 한다거나 친인척을 임차인으로 받는다는 명분으로 임차인이 권리금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금지된다.
모든 임차인에게 계약 기간 5년을 보장하기로 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상가 주인이 바뀌거나, 5년 이내 계약 기간 만료 등을 이유로 임대인이 임차인을 권리금을 받지 못하도록 내보내는 행위를 막기 위한 조처다. 현재는 약 4년치 월세와 보증금의 합산급액(환산보증금)이 4억원(서울 기준) 이하인 임차인에게만 계약 기간 5년을 보장했다.
임대인이 이런 금지된 행위를 했을 때를 대비해 임차인에게 손해배상소송권을 부여했다. 정부는 임차인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권리금 산정기준을 국토교통부 고시에 마련하기로 했다. 권리금 회수 신용보험도 도입된다. 임대인 때문에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보험회사가 대신 권리금을 내주고 보험사는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또 권리금 의무 관계 등을 적시하는 권리금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보급하고, 사용을 권고할 방침이다.
항상 상가권리금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임차인이 3개월 이상 임차료(임대료)를 내지 않았을 때, 임대인과 임차인 간 권리금과 관련해 별도의 합의가 있었거나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또다른 임차인에게 시설 일부를 임대(전대)했을 때는 임차인은 권리금을 보호받을 수 없다. 나아가 임대인이 재건축을 하거나 정부의 정책에 따라 건물이 재개발될 때도 임차인은 권리금을 건지기 어렵다.
이번 정부 방안은 기존에 시민단체나 야당 일각에서 요구했던 것보다, 권리금 보장 범위를 더 넓게 인정한 것도 한 특징이다. 한 예로 상가 권리금 법제화를 처음 시도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법률안에선 신규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과 동일한 업종일 때만 권리금이 되도록 정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물론 야당에서도 이번 방안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변호사)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임차인 권리금 보호에 정부가 나선 것은 전향적인 태도”라고 평가한 뒤, “단, 권리금 보호 방식 등을 놓고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병두 의원도 논평을 내어 “상가 권리금 보장에 여야가 따로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방안으로 상가 임대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불합리성이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일각에선 계약 갱신을 할 때 9%로 돼 있는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을 더 낮추고, 계약 보장 기간도 현행 5년에서 7~12년 정도로 더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김남근 집행위원장은 “임대인이 재건축을 하기로 해 임차인이 나가야 될 경우에도 적정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