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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모 신도시의 학부모 2만여명이 가입한 한 인터넷 카페에는 최근 한 달 동안 유치원 대리 접수·추첨에 대한 문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워킹맘들이 평일 오후 낮에 진행되는 유치원 추첨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로 친인척 외 대리인을 보내는 게 가능한 지 묻는 내용이 가장 많다. 종종 사례금을 내걸고 대리 참석인을 급구하는 글도 올라온다. 이 카페 회원인 학부모 A씨(39)는 "사례 기준이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시급 1만원 내외로 알고 있으며, 주변 분 중 대리 알바를 했던 학부모는 2시간에 3만원을 받더라"고 전했다.

유치원 원아모집 기간이 시작되면서 학부모들이 '입소 전쟁'에 돌입했다. 시간 운용이 자유롭지 못한 워킹맘들은 대리 접수인을 구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고 전업주부 역시 지원 가능한 유치원을 순회하며 정보 수집에 나섰다.

22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관내 공·사립유치원들은 이달 말부터 접수 신청을 받아 다음달 중순까지 입학전형을 종료할 계획이다. 공립유치원은 다음달 2일, 사립유치원은 다음달 8일까지 추첨 등의 방식으로 원아를 모집한다. 다른 교육청 역시 이달 들어 유치원 원아모집을 시작했다.

학부모 사이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은 국·공립유치원이다. 학비가 사립유치원보다 훨씬 싼 데 반해 프로그램이나 시설, 교원 수준은 사립 못지 않게 훌륭하다는 게 중론이다. 반면, 시설 수는 부족해 학부모들은 매년 입학 전쟁을 치러야 한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전국에서 유치원 입소 대상이 되는 연령대의 어린이는 14만8269명에 달하는 반면,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은 10.7%에 그쳤다.

유치원들은 대부분 접수-공개추첨으로 이어지는 입학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접수일에는 추첨증을 배부하고, 추첨일에는 미리 뽑은 추첨번호 순서대로 합격여부를 결정한다. 추첨번호 순서대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데 정원이 적어 앞 번호에서 합격자가 먼저 나와버리면 뒷 추첨번호는 대기번호밖에 뽑지 못한다.

첫째와 둘째에 이어 막내인 3세 딸을 위해 복수의 유치원에 원서접수 중인 학부모 B씨(36·경기 남양주시)는 "해마다 유치원 입소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B씨는 지난 19일 모 유치원에 다문화 및 다자녀 가정이 지원할 수 있는 2순위 전형(정원 4명)으로 원서를 넣었는데, 대기번호 30번을 부여받아 사실상 불합격했다. B씨는 "5년 전 첫째 때만 해도 보내고 싶은 유치원에는 웬만하면 다 합격하는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접수 줄이 유치원 문 밖까지 길게 늘어진 걸 보면서 당연히 떨어질 걸 예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직장에 발 묶인 학부모들은 평일에 진행되는 접수·추첨에 참가하기 위해 친인척을 동원하거나 소정의 사례금을 걸고 대리출석자를 찾는다. 실제로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워킹맘 C씨(38)는 친인척 중 접수일에 대리출석할 사람이 없어 이웃 중에 가능한 사람이 있는지를 찾고 있다. C씨는 "유치원 정보를 알아보려 문의했지만 '전화 상담요청은 받지 않는다'는 대답만 돌아왔고, 주말에 열리는 입학설명회에는 어린이가 입장할 수 없어 남편이 아이를 봐주지 않으면 설명회 참석조차 불가능하다"며 "유치원 자녀를 둔 워킹맘은 진퇴양난의 상태"라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정부가 유치원 입소 경쟁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저출산 문제 해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4세 자녀를 내년부터 일명 '영어유치원'에 보낼 예정인 학부모 D씨(32·서울 서초구)는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이 부담스럽지만 아이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어 이 같이 결정했다"며 "정부는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키우는 과정에서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매해 유치원 입소 전쟁이나 누리과정 예산 파행 등의 일이 지속된다면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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